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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대학병원에서의 ‘태움’… 그리고 정규직 전환의 그늘 아래에서

교육/영상의학

by 침구학개론 2026. 7. 7. 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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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조금 무거운 이야기를 꺼내보려 합니다.

최근 전북 군산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던 20대 방사선사가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한 뒤 숨진 채 발견됐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아직 사실관계는 조사 중이고, 무엇이 진실인지 조심스럽게 지켜봐야 합니다. 하지만 이 소식을 접한 많은 의료기사, 방사선사, 간호사, 병원 종사자들은 아마 비슷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릅니다.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기사를 보며 오래전 제 20대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꿈을 품고 들어간 대학병원

20대의 저는 큰 기대를 안고 대형 대학병원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저는 계약직이었습니다.

그 병원은 규모가 컸고, 한 부서 안에도 수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일했습니다. 복도에는 늘 사람들이 바쁘게 오갔고, 검사실은 하루 종일 긴장감으로 가득했습니다. 환자는 계속 들어왔고, 장비는 쉬지 않았고, 모두가 빠르게 움직였습니다.

“나도 이제 진짜 병원 사람이 되었구나.”
“여기서 잘 버티면 내 커리어가 달라질 수 있겠다.”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생각보다 차가웠습니다.

계약직이라는 보이지 않는 이름표

계약직으로 일한다는 것은 단순히 고용 형태가 다르다는 뜻만은 아니었습니다. 저에게는 늘 보이지 않는 이름표처럼 따라붙었습니다.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있다는 말은 희망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큰 압박이었습니다. 작은 실수 하나, 말 한마디, 표정 하나까지 조심하게 됐습니다. 누군가의 눈 밖에 나면 안 될 것 같았고, 괜히 튀어도 안 될 것 같았습니다.

당시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군 복무 문제로 사회생활을 늦게 시작한 사람들은 오히려 조직 안에서 애매한 위치에 놓이기도 했습니다. 학번이나 나이는 위인데 고용 형태는 계약직인 경우, 이미 정규직이 된 어린 선배들과 관계가 복잡해졌습니다.

누군가는 그런 상황을 불편하게 바라보기도 했고, 나이와 경력이 조금 있는 계약직보다 차라리 어린 신졸 계약직을 더 편하게 여기는 분위기도 있었습니다. 국방의 의무를 다하고 돌아온 사람이 오히려 출발선에서 불리해지는 듯한 아이러니도 느꼈습니다.

그 안에서 저는 더 조심스러워졌습니다.
일을 너무 잘해도 눈치가 보였고, 못해도 불안했습니다. 억울한 일이 있어도 쉽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의 저는 일을 배우는 것보다 사람들의 기분을 살피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썼던 것 같습니다.

태움은 아닌데, 태움 같았던 시간

제가 겪었던 일을 지금 표현하자면, “태움 아닌 태움”에 가까웠습니다.

누군가가 대놓고 저를 괴롭혔다고 단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유 없이 혼나는 날이 있었습니다. 설명을 듣기보다 먼저 지적을 받는 날도 있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혼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 하지도 않은 말들이 어느 순간 부메랑처럼 돌아오기도 했습니다. 사실을 설명하고 싶어도, 그럴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정규직도 아닌데 거들먹거린다.”
“정규직 된다고 소문내고 다닌다더라.”

그런 식의 말들이 어디선가 돌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마다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저는 그저 하루하루 버티며 일하고 있었을 뿐인데, 제 의도와는 다른 모습으로 해석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업무상 지적은 필요합니다. 의료 현장은 환자 안전과 직결되기 때문에 실수에 민감해야 합니다. 저도 그 부분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가르침과 무시는 다릅니다. 주의를 주는 것과 사람을 위축시키는 것은 다릅니다.

정규직 전환의 그늘

정규직 전환을 앞둔 시기는 특히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간절함이 오히려 저를 더 약하게 만들었습니다.

부당하다고 느껴도 말하기 어려웠습니다.
이유 없는 혼남에도 참고 넘어갔습니다.
혹시라도 “문제 있는 사람”으로 보일까 봐 조심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의 저는 참 많이 외로웠습니다.

나는 결국 떠났습니다

저는 그 시간을 어떻게든 버텼습니다.
이겨냈다고 말할 수도 있고, 버텨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아름답게 이겨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러워서 못 해먹겠다.”
“내가 이렇게까지 나를 깎아가며 여기에 있어야 하나.”
“내 인생이 이 조직 하나에 묶여 있을 필요는 없지 않나.”

결국 저는 그 자리를 떠났고, 시간이 지나 미국으로 왔습니다.

물론 미국이라고 모든 것이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어느 나라, 어느 직장이나 힘든 부분은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저는 그때 깨달았습니다.
세상은 생각보다 넓고, 내가 버티던 그 좁은 공간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요.

그때는 그 병원이 제 커리어의 전부처럼 느껴졌습니다. 정규직 전환이 안 되면 끝나는 것 같았고, 누군가에게 미움받으면 제 인생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군산 방사선사 사건을 보며 떠오른 마음

이번 군산 방사선사 사건의 구체적인 사실관계는 조사 결과를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누군가가 “출근하기 싫다”고 울 정도였다면, 우리는 그 마음의 무게를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됩니다.

병원은 생명을 다루는 곳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마음도 생명입니다.

환자 안전이 중요하듯, 의료종사자의 안전도 중요합니다.
검사 결과와 업무 속도가 중요하듯,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의 존엄도 중요합니다.

특히 신규 직원, 계약직, 정규직 전환을 기다리는 직원, 아직 조직 안에서 목소리를 내기 어려운 사람들은 더 쉽게 고립될 수 있습니다.

“다들 그렇게 버틴다.”
“원래 처음은 힘들다.”
“사회생활은 원래 그런 거다.”

이 말들이 누군가에게는 조언이 아니라 침묵을 강요하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태움은 특정 직종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흔히 ‘태움’이라고 하면 간호사 사회를 먼저 떠올립니다.
하지만 병원 안의 위계 문화와 감정적 압박은 특정 직종에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방사선사, 임상병리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치위생사, 응급구조사, 행정직, 보조 인력까지 병원 안의 많은 직군이 비슷한 문제를 겪을 수 있습니다.

특히 방사선사는 환자와 장비 사이에서 빠른 판단을 요구받습니다. 응급실, 수술실, 병동, 중환자실, 외래 검사실을 오가며 긴장도 높은 업무를 합니다.

그런 환경에서 제대로 된 교육 없이 압박만 주어진다면, 사람은 쉽게 무너질 수 있습니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저는 결국 그 시간을 지나왔습니다.
그리고 떠났습니다.

누군가는 저를 보고 “잘 버텼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후배들이 꼭 그렇게까지 버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고통을 견뎌야만 성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처를 받아야만 강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눈치를 보고, 혼자 울고, 매일 출근길에 마음이 무너져야만 좋은 방사선사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후배들이 조금 덜 아팠으면 좋겠습니다.
혼자 끌어안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이상한가?”라고 자신을 먼저 의심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일을 배우는 과정은 힘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을 망가뜨리는 방식으로 배울 필요는 없습니다.

그 시간을 지나오며 배운 것

그 시절이 좋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힘든 건 힘든 것이고, 상처는 상처입니다.

하지만 그 경험은 제게 중요한 것을 알려주었습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
후배를 키운다는 명목으로 상처를 주는 문화는 더 이상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서는 안 된다는 것.
누군가를 가르칠 때 필요한 것은 날카로운 말보다 명확한 설명이라는 것.

실수는 고치면 됩니다.
모르는 것은 배우면 됩니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이 꺾이면 회복하는 데 훨씬 오래 걸립니다.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병원은 환자를 살리는 공간입니다.
그렇다면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도 무너지지 않게 지켜야 합니다.

신규 직원에게 필요한 것은 공포가 아니라 교육입니다.
계약직 직원에게 필요한 것은 눈치가 아니라 공정한 평가입니다.
후배에게 필요한 것은 태움이 아니라 방향입니다.

이번 사건이 단순히 며칠간의 뉴스로 지나가지 않았으면 합니다.
누군가의 죽음이 또 다른 침묵으로 묻히지 않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조용히 버티고 있는 누군가에게 이 글이 작은 위로가 되었으면 합니다.

당신은 혼자가 아닙니다.
당신의 힘듦은 가볍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직장도, 어떤 평가도, 당신의 삶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조금 덜 고통스럽게 배우고,
조금 더 존중받으며 일하고,
조금 더 안전하게 성장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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